" 가난해서 행복했다" 가슴이 따뜻한 의사 김구호 원장
치과의사로 20년, 외길을 걸어온 김구호 원장은 따뜻한 인품과 진주한 언행으로 높은 덕망을 얻은 사람이다. 원래 김 원장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한 시골 농촌에서 성장했다. 힘들었다고 고백할 법도 하건만 그는 한 번도 가난했던 어린시절이
원망스럽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나 정신적으로로는 가난한 지금 시대의 아이드보다 행복했었다고, 자신은
가난해서 행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가난했기에 의사가 되었을 때도 경제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가난했기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행복할 수 있었다. 나이든 어르신들을 진료할 때 내 어머니,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진료할 수 있는 것도 시골에서 성장
했던 그 순순한 감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김 원장, 명석한 아이였던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이후
부산대 치의과로 진학, 본격적인 의사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의사의 길로 내딛는 수련의 시절에 운명처럼 지금 그의 전문분야가 된
임플란트를 만나게 된다. 그때는 아직 한국에 임플란트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했을 때였다고, 처음 임플란트에 대한 강의를 듣고 그는
순간 무릎을 치게 된다. 많은 환자들에게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임플란트가 그에게 획기적으로 다가온 것, 전문의로 더욱 공부해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이후 수련의 시간을 지나, 그가 처음 자신의 이름을 건 병원을 개원한 후에도 계속
되었고 이후 임플란트 전문 의사 명망을 얻은 후에도 줄곧 이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그는 환자 우선의 진료 원칙, 원리 원칙에 부합
한 진료 고집으로 유명하다. 이는 김구호 병원을 운영할 때 생긴 일화를 만들 정도였다. 어느날 김구호 치과가 대기환자가 하도 많다
는 수문이나서 세무서에서 의심을 품고 세무조사를 나왔단다. 회심의 조사끝에 나온 결과는 세무서 직원들을 실망시켰는데 알고 보니
탈세는 커녕 생각보다 수익도 적더란다. 왜 일까? 이유는 많은 환자들이 몰린 것도 몰린 것이지만 원리 원칙에 부합한 진료를 하다
보니 항상 기다리는 일이 생긴 것이다. 칫솔질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하나 하나 꼼꼼히 가르치는 등, 환자들을 세심하게 진료하다
보니 진료시간이 길어져 생긴 에피소드 중 하나, 심지어 어마나 칫솔질을 열심히 가르쳤는지 부산 내 치과 중에서 의료용 칫솔을
가장 많이 구입한 치과가 될 정도였단다. "그 당시에 제가 떼돈을 번 걸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때를 회상
하는 김구호 원장, 이렇게 기본 원칙에 부합한 환자 우선의 진료는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의사로 그 명성을 만든 힘이다.
임플란트 전문, 센텀타워치과 김구호 원장
"원리 원칙에 부합한 진료, 환자 위주의 진료를 고집해..."
"20년간 쌓은 숱한 수술 케이스, 남다른 놔우와 전문성이 빛나..."
"수술 동의서 no, 수술은 의사가 책임져야하는 것 "
"임플란트의 선택 기준은 경제적인 가치가 아닌 발 전문적인 진료와 사후 관리도 두어야 해..."
꼭 필요한 부위에 최소한의 진료, 환자 우선의 진료는 지금도 그가 지키고 있는 원칙이다. 20년 동안 중요한 수술 환자의 치과 진료와
사진을 모두 기록, 보관하고 있는 그는"항상 공부하며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해 노력한다. "며 의사로서의 노력을 말한다. 그 많은 케이
스 케이스마다 전문의로 그의 열정과 노력이 베어난다. 특히 한번 수술로 평생을 함께하게 되는 임플란트 수술의 경우 전문의로서의
그의 치열한 노력과 의료인의 삶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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